고기로 태어나서
Publish date: 2025-05-03Tags: 시사 양극화 노동 한국사회 취업 한승태
(이미지 출처 Yes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60202640 )
감상
2025-05-03
지금까지 출간된 한승태 님의 책 3권 중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가장 읽는 중에 힘들었고,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 일상에서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을 많이 떠올릴듯하다. 사육 농장의 개들은 식당에서 수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요 몇 일 사이에도 그게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보다 고기를 덜 먹어야하고 동물들이 자라는 환경도 덜 고통스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 책이 그 생각을 전달하는 힘이 가장 강하다.
고기를 덜 먹거나 더 높은 가격에 고기를 소비해야하는 방향으로 이 사회가 움직일 수 있을까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육식 비중과 고통이 가득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길러긴 동물의 고기가 사람의 건강에 안 좋다는 메시지로는 약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기르든 지금 수준의 육식이 지구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 아니지만, 오랫동안 우리는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음식 소비자와 공급자, 정부 등 여러 주체들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들처럼 법으로도, 소비자들의 운동으로도, 식품 공학의 발전도 있어야겠다.
인간의 건강이나 지구 환경 외에도 사육 환경이 달라져야할 다른 큰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았다. 다른 존재의 고통을 상상하고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은 사람의 본성이자 능력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감각이다. 이 감각으로 인한 고통과 그것이 무뎌지는 과정은 그 개인이나 인간 사회 전체에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큰 고통을 대리해서 지지 않게 하기위해서, 사람의 본성을 더 살려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동물이 더 나은 환경에서 존재해야 한다.
나한테 선택권이 있는 식사에서는 고기가 덜 들어거나 물고기류가 재료인 음식을 선택하는 정도로 죄책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싶다.
인상깊은 단락
페이지는 전자책 기준
p3
좋아하는 선배 작가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서울의 주인들이 그럴 듯한 일자리를 맡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의 기록자로 임명했다.
p10
삼풍백화점은 1995년에 무너졌고 502명이 죽고 937명이 부상당했으며 재산 피해액이 2,700억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읽은 사람은 자신이 이 비극을 ‘안다’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P47
양계장에서 일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사람은 업보를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되돌아올 거라고 믿는 사람들 말이다.
p82
폭력적인 역사가 사람들에게 남긴 가장 큰 해악은 우리 삶의 변화가 한두 사람의 지도자 덕분이라고 믿게끔 만든데 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성공을 두 손으로 일군 당사자들은 역사의 들러리로 물러나 버렸다.
p123
비천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들의 저항이 때로는 효과를 거두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저항은 피부가 아니라 양심에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p136
“그러니까 11만 마리 키워서 2,000만 원이 순이익이라는 거죠? 사료비, 난방비, 뭐 이거저거 다 떼고?”
p264
차별에 구체적인 형태를 제공하는 것은 혐오지만 그것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사랑이다. 게다가 그런 사랑을 통해 얻은 이익을 거절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의 원칙에 공감하지만 자신이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명백한 경우엔 노골적으로 차별을 요구하기도 한다.
p429
어떤 사람들은 한국은 땅이 좁아서 유럽 국가들에서 그러는 것처럼 가축을 풀어놓고 기르는 방식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전국 곳곳에서 골프장을 짓는다며 산을 깎고 땅을 파헤치는 걸 보고 있으면 그것도 핑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p430
나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을 이론서 한 귀퉁이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기준을 가지고 폄하하고 있는걸까? ‘다 그런 거지’라는 말속엔 내 비난보다 훨씬 더 거대한 존재에게 호소하는 울림이 있었다.
p478
역사학자 키스 토마스는 “애완동물이란 집 안에 들이고 이름을 붙이며 절대 먹지 않는 대상”이라고 정의했다. 또 인류 동물학자 제임스 서펠은 애완동물에 대해 “우리와 함께 살지만 뚜렷한 역할은 없는 동물”인 것이라 했다. 학자들의 견해에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어째선지 두 경우 모두 백수로 부모님 집에 얹혀살던 시절의 나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설명이다.
p503
말하자면 그는 다른 존재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에 철저하게 무능했다. 이 농장은 그러한 상상력의 결핍 위에 세워진 궁전이었다.
p551
오늘날 동물에게 지나친 고통을 강요하는 전통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여우 사냥이나 스페인의 투우가 금지된 것이다. 미국도 푸아그라를 금지하는 추세에 있다.
p552
comments powered by Disqus하루에도 수십 톤의 음식 쓰레기를 쏟아내는 시대가 소비하는 고기의 양과 종류는 느는 게 아니라 줄어야 한다. 그것이 동물과 환경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합리적인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