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위한 변명

Publish date: 2004-01-20
Tags: 경영 시사

Table of contents

  1. 메모
  2. 감상

메모

2013/08/03

지금 읽어보니 감상문의 표현에 군더더기가 많고, 논리도 유치하다. 다시 써볼까 싶기도 하지만, 만족할만한 글이 나올려면 많은 노력이 들어갈 것 같다. 현재 지식과 능력이 부족해서 시작할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

감상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의 대기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비판에 대한 변호를 하고 있다.

책의 시작에서는 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기업이 잘되는 국가가 국력이 뛰어난 국가이기 때문에 우수기업 육성이 국제 경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 기업의 차이를 비교해서 우리도 우리 문화에 맞는 기업형태와 조직이 필요하고, 우리의 환경에는 지금의 대기업이 불가피하였음을 주장했다. 한국의 지금 대기업 형태가 가질 수 있는 장점들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대기업 형태가 필수적임을 말하면서 사회에 만연한 재벌비판에 대해서 반론을 펼쳤다. 책 말미에서는 해외석학들의 인터뷰 자료를 통해서 저자의 주장에 다른 외국학자들도 많이 동의하고 있음을 알렸다.

반기업 정서가 맹목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는 저자에 주장에 일부 동감한다. 특히 각 국가마다 환경여건에 따라서 기업의 형태가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무조건 외국모범사례만 강조해서 따라가는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문화에서 귀 담아 들을만 하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을 기르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 기준으로 기업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중요하게 새겨두어야 한다.

그러나 책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고, 이를 중심으로 글을 써보고자 하였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유명한 경제학자이시고, 수많은 연구와 인용자료를 가지고 집필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을 존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되풀이 해서 인용하는 감상문을 쓰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저자의 생각을 더 깊이 분석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핵심적으로 저자는 일반 대중들의 반기업 정서를 편향되게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를 부의 집중에 대한 시기나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많은 탓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재벌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인식의 바탕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시기로 본다면 그 안의 합리적인 지적들마저 흘러벼릴 우려가 있다. 지난 98,99년에 일었던 벤쳐열풍에서 단기간에 때 돈을 벌고 신흥갑부가 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사람들을 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시기보다는 부러움이였고 한편으로는 선망의 대상이였었다. 나중에는 대다수의 벤처기업들이 쓰러졌고 그 열풍이 거품으로 평가되었지만, 그래도 사회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었다.

국민들이 재벌에게 반감을 품는 이유는 정경유착, 탈세, 부당내부 거래 같은 불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기심이 있어도 모든 과정이 정당했다면 대놓고 비판을 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또 재벌해체를 외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벌개혁으로 대기업들이 좀 더 시장 질서를 잘 지키고 올바르게 나아가는 방향을 바라는 마음에서 재벌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의 반공교육 탓에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보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상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도 대기업의 불법적인 형태가 나타날 때면 누구나 비판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저자의 색깔론 공세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언급을 하였다.

저자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상 큰 기업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벌 해체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여러번 펼쳤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인구 4천 5백만의 큰 국가이기 때문에 석유를 수입해도 큰 유조선이 필요하고 이것은 작은 기업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논리를 누가 부인한 적이 있던가? 대대수의 재벌비판의 요지가 한 기업이 어느 정도 커지면 더 크게 못 만들거나 분할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큰 유조선을 다룰 수 있는 큰 기업은 필요하지만 꼭 그 기업이 우리 나라의 재벌 그룹과 같이 업종별로 계열사를 다 가지고 있는 기업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제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 큰 기업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액이 늘어났다는 것을 좋은 소식으로 여기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기업들이 불공정한 형태를 국내에서 보이고, 권력을 남용한다면 우리 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기업에 대해 당연히 비판을 할 것이다.

둘째, 약육강식의 국제사회를 보는 눈이 너무 단순하게 ‘그 경쟁에서 힘으로 이겨야 한다.’는 논리에만 안착한 것 같아서 아쉽다. 특히, 후진국을 보는 시선이 다 그 나라에 우수한 기업과 기업가가 없어서 그렇다는 식의 단순서술은 국가 간의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착취 문제를 너무 도외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서양 문명의 동양을 압질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양문명이 기업을 잘 키운 힘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19세기와 20세기초의 서양문명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기업을 잘 키워서 국가의 힘을 키웠고, 그 힘에 일본이나 우리 나라는 밀렸으니 이는 우리가 힘이 없었던 탓이고, 우리도 서양을 본받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어도 저자의 논리전개로는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을 키워서 일본처럼 다른 나라를 지배했어도 국력이 있으니 정당한 일인가? 기업을 잘 키운 결과로 다른 나라를 억누르고 지배해서 힘에서 우위를 보이는 것이 국가경쟁력의 향상이란 말인가? 이는 지난 세기초 세계를 뒤덮었던 사회진화론의 사상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 3세계의 경제문제에 대해서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핵심부인 구미 지역과 주변부의 불평등한 관계를 지탱하는 데서 중심이 되는 것이 불공평한수출계약과 제3세계 독재정권에 대한 묵과의 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박노자 교수는 나이지리아에 진출한 노르웨이 기업인 ‘쉘’을 그 예로 들고 있는데, 그 기업의 석유 유출의 결과로 니제르 강 유역의 생테계 파괴와 주민경제는 거의 파탄의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복합적으로 봐야할 제3세계 경제 문제를 단순히 ‘그 나라에 훌륭한 기업이 없어서’라고 몰아 붙이기에는 저자의 주장이 너무 단순해 보인다.

셋째, 저자가 ‘색깔론’에 빠져있지 않은가 인상을 받은 것은 아쉬움 점이다. 근거가 없이 감정적이라고 여겨지는 표현들이 책 여기저기서 많이 보여진다.

‘명태와 사람은 두들켜 팰수록 좋게 된다는 철학이 공산국가에는 근본철학으로 널리 깔려 있다.“ (183페이지)

기업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도 상당히 편향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신동아 99년 11월호에 실린 저자의 강연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회주의 병의 진단법을 알아보자. ‘산업사회의 농토’인 기업을 해체하자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다. 기업의 단점을 계속 부각시키고 공론화 하면서 처벌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사회주의 병에 걸린 사람이다. 기업을 공갈·협박하는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업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단점이 저절로 묻히도록 하는 체제다. …… 후진국 지도자들의 상당수는 사회주의병에 걸린 사람이다. 사회주의 병은 약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항상 사회의 잘못된 부분만을 부각시키고 공론화 하여 처벌하는 데 나라의 힘을 쏟아 부으니, 나라가 잘 될 리 없다

위와 같은 송교수의 주장에 어느 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송 부총장의 주장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은 서구 선진국 기업과 한국 재벌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주장이라며 반박했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미국의 GE 등 선진국 거대 기업들은 기업의 소유나 지배구조, 경영의 투명성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의 재벌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총수의 독단과 경영책임의 부재, 부당 내부거래 등 고질적 병폐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우리 재벌을 선진국 대기업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건국대 경제학과 최정표 교수는 송 교수와 마찬가지로 선단식 경영을 지지하는 전국경제인연합 유한수 전무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선단경영이란 재벌의 선단경영입니다. 예컨대 현대그룹은 정씨 가문이 지배하면서 모든 의사결정을 한다는 말이에요. 백화점·병원·골프장·증권·건설·자동차·중공업 등 안 하는 것이 없이 다 하는 선단식 경영의 문제점을 말하는 겁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기업 단위나 관련 산업에서 영역을 넓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깁니다. 우리 재벌의 선단식 경영은 족벌 경영과 직결되는 문제예요. 법적으로는 기업들이 독립법인인데, 총수가 법적인 직책을 갖지 않은 채 경영자인 대표이사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놓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대표이사가 최고 경영자입니다. 따라서 족벌 체제를 없애면 선단식 경영은 자동적으로 없어지고, 개별 기업단위의 경영체제로 간다는 겁니다. …… 선단식 경영은 싹쓸이 경영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의 성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에서는 앞으로 재벌만 살아남게 돼요. 그건 재벌에 경쟁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경제구조 자체가 재벌만 살아남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주장은 이런 비판에 대해서도 ‘사회주의 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색깔론으로 몰아 붙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넷째, 책 말미에 있는 세계 석학들과의 인터뷰 내용에도 비판의 여지가 많다. 그 인터뷰들은 기초적인 수준의 내용을 주로 동의를 구하는 ‘맞습니까?’식의 질문을 통해서 피상적인 답안을 얻어낸 뒤 그것을 세계 석학들이 자기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한국 재벌에 대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하는 단순한 질문에 이미 한국경제의 성장이 재벌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해외석학은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강준만 교수는 “별것도 아닌 내용에 대해 ‘맞습니까?’라고 물으며 자신의 지식을 확인 받고자 하는 모습은 보기에 애처롭기까지 하다”라고 까지 표현했다. 다음은 강준만 교수의 비판의 일부이다.

송 교수는 {기업을 위한 변명}의 <제 14 강의 : 해외 석학들은 이렇게 말한다>에서 10쪽에 걸쳐 ‘해외 석학’들의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이야기를 실어놓고는 “약 20명이 넘는 석학들과 대담했는데, 그들의 견해도 저자와 비슷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주장하는 재벌 옹호론은 ‘해외 석학’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거라는 걸 과시하기 위한 것 같다. 그것 참 이상하다. 재벌 개혁을 비판할 때엔 사대주의를 버리라고 호통을 치는 분이 재벌 옹호를 위해선 사대주의, 그것도 아주 수준이 낮은 사대주의를 구사하시니 말이다.“

그리고, 저자가 일본 기업과 미국기업을 비교설명하면서 지나치게 일본기업 쪽에만 무게를 실어서 강조를 한 점은 아쉬운 점이다. 우리 환경에 만든 기업형태와 조직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에는 이 책에는 일본기업 쪽의 모델만 상세히 제시되어 있어서 균형이 안 맞는 자료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우리 기업이 부족한 점은 미국기업의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투명함, 피고용인의 직업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에 아쉬운 부분이였다.

저자는 한국의 재벌 그룹의 장점에 대해서 주로 언급을 하였다. 안정된 자금력을 바탕으로 큰 사업을 할 수 있고, 각 계열사간의 시너지 효과, 규모의 경제, 정보력 등이다. 상당 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거기에 따른 단점도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 기업이 무너지지 않게 안정망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시장 전체로 봐서는 더 큰 위험이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부실한 한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서 그룹전체의 자원을 투입하다 보면 우량한 계열사까지 포함한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항상 기업이 합리적인 투자를 해서 적절한 선에서 투자를 하고 철수를 한다면 그런 일이 없겠지만, 항상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책에서도 ‘부도가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이 없는 종교와 같다’는 말을 했다. 그룹기업의 안정망 역할은 경쟁력도 될 수가 있지만 동시에 더 큰 위험과 안일함을 낳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저자도 작은 기업부터 큰 기업까지 모두 잘 되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때로는 국내시장에서 중소기업 육성을 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어느 정도 크기까지 혜택을 주거나, 대기업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금력이나 시장점유율에서 딸리는 중소기업들이 계열사간의 연합으로 막강하게 버티고 있는 대기업들과 처음부터 경쟁을 하기에는 힘들다. 그때 어느 정도 정부의 개입이 있는 것이 시장을 좀 더 원활히 하고 경쟁을 촉발시키고 다양한 기업을 육성시키는 취지에 더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항상 정부의 개입이 성공적이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무턱대고 시장의 기능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국제 시장에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우기 위해 국내시장에서 독점이 되어가서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어떤 방식의, 어느 정도의 제어가 필요한지 정답은 없는 말이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은 ‘기업을 위한 변명’이다. 변명이 필요한 정도로 대기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대기업들이 명백히 비난 받을 만한 여지가 없이 도덕적으로 운영이 되어서, 대기업 경영방식에 대한 여러 이견에는 ‘변명’이 아닌 당당한 ‘옹호’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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