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Publish date: 2014-08-24
Tags: 시사 역사 한국사 유시민

인상깊은 단락

p14

자유인의 서재에서 유시민

p18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걸출한 개인을 흠모하는 성향이 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것도, 남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것도 왠지 편하지 않다. 돈이나 권력보다는 지성과 지식을 가진 이를 우러러보며 내가 남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한, 사회든 국가든 그 누구든 내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한다고 믿는다

p22

나는 고령 유권자들이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고 했다고 추측한다.

p29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기의 사실을 가지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기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다.

p54

굶어죽기전의 사람에게 ‘존중과 존경’, ‘자아실현'과 같은 것은 정신적 사치일 수 있다.

.. 중략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리일수록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철학서가 많이 출간되고 읽힌다

p99

18년 동안의 집권기간에 박정희 정부는 농업 중심의 전통사회를 중화학공업을 보유한 산업사회로 만들었다. 고속도로와 항만, 비행장을 비롯한 사회간접 자본을 건설했고 헐벗은 민둥산을 숲으로 바꾸었다. 전국에 상하수도와 전기를 보급했고 기생충과 전명병을 퇴치했다. 나는 이런 것이 ‘커다란 선'이었다고 생각한다.

… 중략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p129

합리적 규칙이 있고 자본가와 노동자, 정부와 기업, 공급자와 수요, 그리고 시민들 각자가 모두 그 규칙을 지키면서 남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다.

p178

정의, 평등, 인간해방 등 혁명가들이 내거는 목표가 무엇이든, 어떤 추상적인 선을 실행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재조직하려는 혁명은 반드시 전체주의 독재로 귀결된다.

.. 중략

그래서 포퍼는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혁명을 하기보다는 현실적인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한 사회적 개혁과 개량에 집중하자고 호소했다.

p187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는 다양한 불법행위를 수반한다. 도로점거, 투석, 화염벽 투척 등 시위대의 모든 행위가 실정법 위반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그서을 최고의 법인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으로 받아들일 경우, 그 모든 것은 불법이지만 정당한 행위가 된다.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실현하는 민중의 저항권 행사이기 때문이다.

p257

그가 투박한 부산 사투리로 ‘햅상을 갤랠되었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이 내가 본 정치인 김영삼의 모든 모습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p335

전태일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린 엿어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을 재선하기 위해 분신했다 그는 평화시장 노동자들 가운데 급여수준이 갖아 높은 재단사였다

p347

김영삼 대통령이 총애했던 이진제 노동부장관은 전경련과 경총, 보수언론의 엄청난 비난에 굴하지 않고 1995년 7월 7월부터 종업원이 30명 넘는 모든 기업의 상용근로자를 피호험자로 하는 시행령을 확정함으로써 공요보험을 출법시켰다. 이때가 정치인 이인제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빨갱이라는 욕설에도 주눅 들지 않고 소신을 관철했다.

p415

만약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오늘보다 더 훌륭한, 최소한 지금보다 덜 추한 대한민국에서 살게 된다면, 그런 대한민국 만드는 힘은 바로 이러한 공감과 공명에서 나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416

기성세대를 사로잡은 것은 욕망, 그것도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과 분단 상황이 강요한 대북 증오와 공포감이었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그들보다 강하게 자기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망, 그리고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에 끌린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앞날에 무엇인가 진보적인 변화가 찾아들려면 그 동력은 이들 젋은 세대가 지닌 ‘고차원적 욕망'과 공감의 능력일 것이다.

p366

이수근이 갑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인물을 조갑제 기자였다. 그는 1989년 3월호 ‘월간조선'에 이수근 사건을 심층보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극우지식인’ 조갑제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형수의 인간적 진실을 탐사한 민완기자였다는 사리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건조하고 날렵한 조갑제 기자의 문장과 날카로운 시선을 무척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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