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각본집

Publish date: 2023-09-16
Tags: 대본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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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지만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빽빽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3시간이 흘러갔다. 묘한 재미를 주는 영화이고 대사와 영상을 머리 속에서 여러 번 곰씹을만 하다.

놀란 감독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서는 테넷보다는 좋았지만, 난 이 영화보다는 덩케르크가 더 마음에 들긴한다. 테넷에 비하면 훨씬 친절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덩케르크보다는 더 거리감을 두고 보게 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덩케르크가 오펜하이머보다는 큰 흐름이 주는 감정에 공감하기가 쉬운 면이 있어서인듯하다.

즉, 나를 포함한 한국 관객은 이 영화의 큰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난이도가 높아보인다. 결말이 알려진 역사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우리 나라 관객이 이순신 장군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이, 미국 관객들은 이 영화를 많이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대사와 수많은 등장 인물을 쫓아가는 것도 비영어권 관객에게는 더 의도적인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 나라 현대사를 떠올리는 관객에게는 이 영화의 절정부 갈등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만도 하다. 영화가 바탕으로 한 전기인 ‘어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오펜하이머가 보안 청문회에서 당한 굴욕 때문에 쓰여졌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그 청문회 사건이 핵심이고 원자 폭탄 실험의 찬란한 성공은 후반부의 비극과 대비시키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나는 본다. 우리나라의 70~80년대에 더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다치고 생계도 어렵게 된 사람들과 비교해본다면 오펜하이머가 남산에 끌려가서 고문이라도 당해야 한국 관객에게는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청문회가 오펜하이머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큰 비극이라는 역사적 배경은 충분히 이해는가지만 대작 영화의 최고조를 이끄는 사건 그 자체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순한 맛으로 느껴졌을법하다는 이야기다.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이끈 천재 과학자의 감정을 일반인이 일상 생활에서 만날 일이 없기에 영화에서 오펜하이머의 큰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벽도 큰 높은 편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영화들이 가족애를 끌어드리는 것도 이해가 가고, 인터스텔라가 우리 나라에서 천만관객을 넘어선 것도 주인공의 큰 감정들이 공감하기 쉬워서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덩케르크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절정에서 표현된 보편적인 인류애가 멋지다고 기억에 남아있어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본집까지 살 정도로 오펜하이머는 돌아보고 싶은 여운이 많은 영화이다.

같은 대사를 여러 장면에서 반복하면서 복선을 깔고 극적 효과를 높히는 놀란 감독의 수법을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그 중 압권은 ‘인셉션'의 ‘Your world is not real'이였다.) 오펜하이머에서도 그런 대사들이 여러 번 있었고, 소리를 통해서도 그런 시도를 했다.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느낀 감정을 영상과 소리로 표현하는 감정의 블록버스터라고 할만하다. 그 의도에 따라 각본집도 1인칭 시점으로 쓰여져있다. 시대 상황, 인물의 특수성을 떠나서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만한 다면성, 자가 당착, 성취와 좌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이 블럭버스트가 표현하는 감정들이 더 와닿을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면서 겪는 갈등과 성취, 변화가 가장 와닿는 감정이였다.

오펜하이머가 ‘별의 죽음'을 연구한다는 대사도 인상 깊다. 그래서 그가 지구의 죽음을 다른 사람보다 상상하기가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2023.09.16

인상 깊은 단락

괄호 안은 원서의 페이지

p12

카이버드의 여는 글 중

이러한 불신은, 결함투성이였던 오펜하이머 보안청문회에 어느 정도 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가 무고하게 비난받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1954년의 이 사건은 모든 과학자에게 ‘공적인 지식인의 신분으로 정치판에 개입해선 안 된다'라는 하나의 경고가 되었다. 바로 그것이 오펜하이머 사건의 진짜 비극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현대 세계의 근간인 과학 이론에 대해 솔직하게 토론할 능력을 손상당했다.

p80 (p49)

테트록 : 당신을 일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들과 멀어지지마. 언젠가 그들이 필요할꺼야.

Tatlock : Don’t alienate the only people in the world who understand what you do. One day you might need them.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p145 (p99)

오펜하이머 : 전 오랫동안 많은 비밀을 혼자 안고 살아왔습니다. 누굴 만나도 그런 비밀은.. 입 밖에 안 냅니다.

Oppenheimer : Look, I’ve had a lot of secrets in my head a long time. It doesn’t matter who I associate with … I didn’t talk about those secrets.

중의적인 대사다. 비밀을 테트록 과의 관계와 핵 개발 프로젝트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p148 (p102)

테트록 : What if I need you?

오펜하이머 : [고개를 흔든다]

테트록 : Not a word? (잠깐도 못 봐?)

이 장면은 태트록의 대사 ‘You left. Not a word'로 시작하는데, 끝내는 대사도 ‘Not a word?‘라는 점이 대칭적이다.

대본집에는 없지만 영화에서는 두 문장 사이에 테트록은 ‘You said you’d always answer.‘라고 말한다. 68쪽의 오펜하이머의 대사 ‘언제라도 받을꺼야.’ (원서 p40의 I’ll always answer)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이다.

이어진 장면에서 태트록에게 핵개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면서 청문회에서 진술 할때 오펜하이머가 하는 말도 ‘It was, as a matter of fact. Not a word.‘이다.

p167 (p116)

보어 : 이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가 된 거야. 원자폭탄의 아버지.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힘을 준 자. 세상은 자넬 떠받들겠지. 자네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Bohr : You’re an American Prometheus - Father of the Atomic Bomb. The man who gave them the power to destroy themselves. They’ll respect that. And your work really begins.

p251 (p178)

스트로스 : 그를 벌주려는 게 아니라 몰아내려는 거니까.

Strauss : We’re not convicting. Just denying.

p287 (p206)

스트로스 : 그래, 날 벌주려는 게 아니라 그저 몰아내려는 거니까.

Strauss : They’re not convicting. Just denying.

251페이지와 대칭적인 대사이다.

p304 (p218)

아인슈타인 : 이젠 당신이 그간 이룬 성취의 결과를 감당할 차례요. 그리고 훗날… 충분히 벌을 받고 나면… 사람들은 연어와 감자 샐러드를 대접하며 축사와 함께 메달을 주겠죠.

Einstein : Now it’s your turn to deal with the consequences of your archivements. And one day … when you’ve punished you enough… They’ll serve salman and potato salad, make speeches, give you medal…

별책부록(각본집 해설) p40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수소폭탄을 비롯한 핵무기는 모순적이게도 제3차 세계대전을 막고 강대국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왔다.

각본집 해설의 내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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