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Publish date: 2013-08-11Tags: 여행 미국 홍은택 나무
감상
-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가고 싶어진다.
- 애팔레치아 산맥을 종주에 성공한 ‘너만의 길을 가라'를 먼저 읽었는데, 중간에 포기를 많이 한 ‘나를 부르는 숲’ 쪽이 훨씬 더 친근감이 간다.
- ‘거의 모든 것이 역사'의 저자인 ‘빌브라이슨’ 답게 풍부한 역사적, 과학적 사실을 전달해주는데, 덕분에 여행길을 따라가는 재미가 더 깊었다.
- 미국의 광활한 자연이 부럽기도 하고, 환경오염으로 훼손되는 살림이 안타깝기도 하다.
- 역자 후기도 인상적. 애팔레치아 트레일 종주를 나서는 커플을 보고 ‘또, 백년 가약을 맺기 전에 좋은 반려자가 될 수 있는지 서로를 실험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체험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부분은, 결혼 전에는 배낭여행을 같이 떠나보라던 ‘건투를 빈다'의 조언이 겹쳐져 떠올랐다.
인상깊은 단락
p195
35년만에 아메리카 밤나무는 기억으로만 남았다. 애팔래치아 산맥 한 군데서만, 한 세대만에 모든 나무의 4분의 1인 40억 그루를 잃었다.
p203
미국인의 평균 보행거리가 하루 320미터
카츠와 내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20분 걸을 때마다 우리는 미국인이 평균 일주일에 걷는 것보다 더 걷는 셈이 된다.
p419 ~ 429, 옮긴이 후기
또 부러운 게 있다. 그들의 상상력을 받쳐주는 자연의 광활함이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산길로만 가는 대장정을 결심하는데 뭐 그리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쉽게 광대한 모험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천혜의 조건을 타고 났다.
돌이켜보면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휴지 없이 해오고 있는 과정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고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군대를 다녀오고, 제대를 해서는 시험을 준비해 회사에 들어가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조직의 쓴맛'을 보지 않기 위해 주야장천 일에만 몰입한다.
항상 지금은 다음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나쁘게 보면 근근이 빚을 가려나가는 빚진 죄인 같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서 자산이 소외되고 있다. 빚을 다 갚았을 때 -아이들이 다 자라고 직장에서 놓여날 나이-에는 이미 자신에게 시험해볼 만한 것들은 남아있지 않다.
comments powered by Disqus꼼짝할 수 없을만치 입시에, 입대에, 입사에 사람을 묶어두는 사회다.